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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내메모

펫로스, 나는 꿈을 기록한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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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 ‘금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제 강아지의 이름입니다. 

※ 금이의 일기는 저의 상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허구입니다. 

※ 아줌마의 메모는 저의 실제 경험을, 아줌마의 꿈은 제가 실제로 꿨던 꿈을 바탕으로 기록하였습니다.     


2023. 6. 7. 

[금이의 일기]    

 

해님이 빵긋 웃으시는 시간이 되니, 아줌마 아저씨가 분주해지셨어요. 

오늘 우리 조금 멀리 간대요. 

주인님들은 제가 좋아하는 간식, 제가 평소에 먹는 사료, 고기 통조림을 이것저것 잔뜩 챙기시더니 제 몸을 차 뒷자리에 싣고 어디론가 향했어요. 

저는 제 몸에 붙어서 아줌마 아저씨를 잘 따라갔지요.      

우리는 아저씨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이동했고 어느 산속으로 들어갔어요. 

그곳에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는데 우리가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는지 우리 주인님들은 차에서 잠깐 대기를 하고 있었어요.

 잠시 후 건물 안에서 이곳에서 일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나오시더니 우리 주인님들에게 정중하게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우리 아저씨는 제 몸이 담긴 상자를 직원에게 건네주셨고 상자를 받으신 직원께서는 상자에서 꺼낸 제 몸을 들어서 저울에 올려놓으시더니 4.3kg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우리 아줌마랑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때 저는 4.5k이었는데 숨을 멈추기 전 집에 실수했던 응아랑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누워서 실수한 쉬야의 양이 많았나 봐요. 무게가 조금 줄었어요.      

직원께서는 우리 주인님들을 안락한 느낌을 주는 방에서 기다리도록 했고 저만(제 몸만) 다른 공간에 데리고 들어가셔서는 깨끗하게 몸을 닦아주셨답니다. 그분의 세심한 손길에 마사지를 받는 듯 시원하고 좋은 기분이 느껴졌어요. 아줌마 아저씨와 잠시 떨어지는 것이 조금 불안했지만 새로운 장소의 냄새가 궁금해서 그냥 얌전히 실려와서 이곳의 냄새를 맡으려 킁킁대고 있었어요. 새로운 장소의 냄새는 언제나 재미있잖아요. 정신없이 냄새를 맡고 있는데 문득 많은 시선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창문 앞에서 몇몇 친구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제가 그 친구들을 보고 꼬리를 치니까 친구들은 궁금하다는 듯 제 주변으로 몰려와 저를 둘러싸고 제 냄새를 맡으며 호기심을 드러냈고 반갑다고 말해줬어요. 이 동네 구경을 시켜주겠다면서 같이 나가자는 친구도 있었고요. 친구들이 참 고마웠지만 지금은 우리 아줌마 아저씨를 잃어버릴까 걱정이 돼서 친구들에게 마음은 고맙지만 가지 않겠다고 거절했어요.  

“그래. 알겠어. 혹시라도 혼자 있으면서 무서워지면 소리쳐도 돼. 우리가 옆에 있어 줄게.”

새로운 장소인 이 동네, 그리고 이 건물에 들어오면서 사실 아주 조금 긴장되고 무서운 마음도 있었지만, 따스한 인사를 건네며 저를 위로해 준 친구들 덕분에 어느새 제 마음속에서는 무서운 마음이 사라지고 설렘만 가득했어요.      

잠시 후 저는 깨끗한 옷을 입고 다른 상자로 옮겨져서 우리 아줌마 아저씨를 다시 만났어요. 

우리 가족은 어느 방에서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아줌마와 아저씨는 제 몸이 담긴 상자 주변에 맛있는 간식, 사료 그리고 아줌마가 평소에 제 이빨이 상한다며 주지 않으셨던 초콜릿 과자를 잔뜩 올려주셨답니다. 

먹지는 않고 눈으로만 봐도 느낄 수 있었어요. 정말로 맛있는 식사라는 것을요. 그중에서 ‘초콜릿 과자’는 제가 자고 있을 때 우리 아줌마가 저 몰래 꺼내 드시기도 했는데 저는 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뛰어나갔기 때문에 우리 아줌마의 간식 몰래 먹기 시도는 항상 실패하셨죠. 물론 제 청력이 좋았을 때의 이야기예요. 

우리 아줌마는 제가 한 입만 달라고 사정하고 애원해도 절대로 ‘초콜릿 과자’는 주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마음 약한 우리 아줌마는 결국 ‘초콜릿 과자’는 아니지만 제 전용 간식을 꺼내 제 앞으로 내어주시기는 했죠. 

이 동그란 모양의 ‘초콜릿 과자’ 오늘 처음으로 먹어 보네요.

한입 베어 물고 보니 이건 그동안 먹었던 간식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세상에나.... 우리 아줌마는 이렇게 맛있는 과자를 그동안 혼자만 먹고 계셨던 거예요? 

‘칫! 내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좀 챙겨주시지. 왜 이제야 주시나요?’ 툴툴거리면서 아줌마와 아저씨를 쏘아보는데 우리 주인님들이 또다시 울고 계셨어요. 

저는 과자를 먹다 말고 아줌마 무릎 위에 앉아서 우리 아줌마를 위로해 드렸어요. 

“아줌마! 제가 과자 때문에 심술부려서 속상해서 우는 거예요? 진짜로 심술 난 것이 아니에요. 제가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어서 음식을 가려서 주셨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어요.”

“...........”

“할머니랑 아줌마 집에 처음 왔던 그다음 날 아줌마가 저 병원에 데려가셨던 일이 기억나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제 이빨 상태가 좋지 않다고 몇 개가 썩어있다고 그러셨죠. 아줌마는 그래서 제 이빨에 좋지 않은 건 최대한 안 주려고 하셨잖아요? 맞죠? 근데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할머니는 아줌마가 외출하시면 꽈배기 빵, 호두과자, 바삭바삭하고 짭조름한 과자, 튀김, 과일까지 전부 주셨답니다. 할머니 덕에 저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맛있다는 음식들을 많이 먹어봤어요. 그래서 저는 더는 아쉬운 것 없어요.”

저는 우리 아줌마와 아저씨가 울음을 그치기를 바라면서 해도 될 말, 안 해야 할 말 가리지 않고 생각 없이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주절거렸어요. 어차리 우리 주인님들은 제 말을 못 들으시니까요. 괜찮아요.      

우리 주인님들은 조금 진정이 되었고 이 방에 준비된 종이를 발견하셨어요. 그리고 각자 무엇인가 열심히 종이에 써내려 가셨고 그 종이를 제 몸 옆에 가지런히 넣어주셨어요. 제게 전하는 말인 것 같기는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알 수 없었어요.      

잠시 뒤 저는 다른 방으로 옮겨졌어요. 우리 주인님들은 따라 들어오지 않으셨죠. 저와 처음 우리 가족을 이 건물에서 맞아주셨던 직원분 단둘이 그 방에 들어갔어요.

그 직원분은 저를 새까맣고 작은 상자에 넣으셨는데 저는 혼자 그곳에 갇힌 기분이 들어 무서워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때 저보다는 조금 덩치가 큰 친구들이 공간으로 들어오더니 저에게 “몸에서 빨리 나와. 거기 계속 있으면 아플 테니까. 이제는 그만 나올 때가 된 것 같아.”라고 다급하게 말해줘서 저는 서둘러 제 몸에서 떨어져 나왔어요. 

“왜? 내 몸이 어떻게 되는 건데? 천천히 썩어가는 거 아니야?” 제가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자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검은색 친구가 말했어요.

“아니, 여기서는 우리 몸을 뜨거운 불로 태워. 몸에 계속 붙어 있어도 실제로 아픈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네 몸과의 연결이 끊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통스럽다고 착각할 수도 있거든.”

 저는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몸에서 빠져나온 상태에서 우리 주인님들을 찾기 시작했고 곧바로 제 몸이 들어가 있는 이 공간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고 계시는 두 분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제가 주인님들을 찾아가서 우리 아줌마 어깨 위에 올라앉으니 그 친구들은 저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이 자리를 떠났어요. 

우리 가족이 방금까지 제가 들어가 있던 새까맣고 작은 상자를 지켜보고 있는데 직원분이 안에서 우리 주인님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고는 돌아서서 기계를 작동시키셨어요. 기계 소리가 들리면서 제 몸 양옆에서 커다란 불꽃이 맹렬하게 일더니 순식간에 타올랐고 제 몸을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어딘지 모르게 가슴을 옥죄는 슬픈 감정이 들어 눈물이 흘렀답니다.      

뜨거운 바람이 훅 불어 제 몸에 닿는 순간 우리 아줌마와 아저씨가 저에게 적어주신 편지도 제 몸과 함께 불에 타들어 갔어요. 그 덕분에 저는 편지에 적힌 아줌마 아저씨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데 우리 아줌마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금이야. 우리 금이야. 너무 이쁜 우리 금이야. 아줌마가 며칠 전에 진작 산소발생기 대여해 놓았어야 했는데 우리 금이 고통스럽게 12시간 동안 힘들게 아픔과 싸우게 해서, 참아내게 만들어서, 고통을 줄여주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어서, 옆에만 있어 주면 다라고.. 감히 그렇게 생각하고 아프지 않게 해주지 못한 것, 너무너무 미안해. 아줌마 인생 최고의 친구, 지난 12년 동안 나와 함께 살아서 너는 행복했니? 힘들었니? 미웠니? 설령 네가 힘들었다고 해도, 네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아줌마는 금이가 있어 줘서 너무 행복했어. 아니, 행복해. 죄책감은 아줌마가 평생 안고 살게. 너에 대한 미안한 마음 아줌마가 평생 괴로워하면서 너의 고통을 줄여주지 못한 죄에 대한 벌 받으면서 살아갈게. 아줌마 용서해주렴.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아줌마는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아. 허전하다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공허해. 거기서는 좋아하는 냄새도 많이 맡고 많이 뛰어놀면서 그렇게 지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튼튼하게 씩씩하게 살고 있어야 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줌마가 꼭 너를 찾아갈게. 꼭 찾아낼 거야. 그러니까 아줌마가 우리 금이 얼굴 잊어버리지 않게 아줌마 꿈에 자주자주 나와줘. 사랑해.”     

아줌마의 마음을 읽고 나서 저는 무척 마음이 아팠어요. 아줌마... 평생 괴로워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면 제가 편하게 못 놀잖아요. 아줌마 저 지금은 오히려 마음도 몸도 즐겁고 편해요. 아줌마 그러지 마세요. 

저를 찾아낼 필요도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늘 아줌마 옆에 있을 것이고 아줌마가 그냥 고개만 살짝 돌려 옆을 보면 제가 그 시선이 닿는 거리에서 엎드려서 아줌마를 올려다보고 있을 거라서요. 아줌마가 힘들게 저를 찾으려고 애쓰지도 말아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저는 아줌마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만 해도 우리 아줌마도 의미 없는 고통을 받지 않으실 텐데. 어떻게 제 마음을 전하죠? 저는 너무 답답했어요. 

......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제 몸은 다 타버렸답니다. 

직원분이 다 타버려 부스러지고 흩어져버린 제 몸의 흔적들 속에서 조심스럽게 뼈만 골라내 자그마한 통에 담아 우리 주인님들에게 보여주셨어요. 

이제 우리 주인님들이 저 통을 들고 집으로 가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디에 묻어주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런데 우리 주인님들은 직원분에게 통을 다시 돌려주셨어요.

직원분은 통을 들고 건물의 위로 올라가셨어요. 우리 주인님들은 일어서서 서로 몇 마디 나누시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시네요. 

제 뼈를 여기에 버리고 가시려나 봐요. 이제 저를 이곳에 맡겨두고 안 오시는 것일까요? 저는 언제든 아줌마 옆으로 갈 수 있으니 크게 걱정은 되지 않지만 조금 서운했어요.

음.. 이제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주인님들을 따라 저도 밖으로 나갈까요? 아니면 제 뼈가 있는 이곳에 남아있어야 할까요? 고민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던 그때 두 마리의 친구들이 놀러 왔어요. 

두 마리 중 한 녀석은 아까 제 몸이 불에 타기 전에 저에게 몸에서 나오라고 말해주었던 덩치가 큰 친구 중 하나였어요. 짧은 갈색 털과 긴 다리가 멋있어 보이는 친구예요. 

나머지 다른 한 친구는 저랑 털 색깔의 구성 그리고 얼굴까지 전부 똑같이 생겼어요. 와! 이 친구는 진짜 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보다 크기는 조금 작고 더 순한 인상이지만 저랑 같은 종류의 친구라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뭐 하니?” 저랑 똑같이 생긴 친구가 말을 걸어줬어요. 

“우리 주인아줌마가 나를 여기 두고 가려나 봐.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니? 무서워.” 

“걱정하지 마.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를 혼자 남겨 놓고 떠나지 않아. 뼈를 그대로 들고 가거나 아니면 보석으로 만들어서 가져가거나.”

“보석?”

“응. 이 건물 2층은 네 뼈가 보석으로 다시 탄생하게 되는 곳이야. 근데 그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 기다려봐. 아마 너희 주인님들은 다시 너를 찾으러 오실 테니까 그동안 너는 우리랑 잠깐 놀자.”

친구의 말을 들으니 저는 안심이 되었어요.

“그렇지? 우리 아줌마가 나를 버리실 리가 없지. 그런데 너희들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왜 아직 여기 있어?”

전 문득 이 친구들이 왜 여기 남아있는지 궁금해졌답니다.

저를 반겨주고 무서워하지 않도록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도 보석이 되려고 여기 남아있는 것일까요?     

저랑 똑같이 생긴 친구가 계속 말했어요.

“나는 샐리야. 몇 달 전에 아빠가 다치셔서 엄마랑 사람들이랑 병원에 가셨던 적이 있거든. 엄마가 그날은 경황이 없으셨는지 급하게 나가면서 평소와 다르게 마당 문을 열어놓고 나가신 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아빠가 혹시 어디 잘못된 것은 아닌지, 걱정돼서 아빠를 찾으러 우리 동네를 벗어나 멀리 나갔거든. 그때 어떤 차에 치여버렸어. 내가 나빴지. 집에서 기다렸어야 했는데 제멋대로 나가는 바람에 사고가 났으니.”

“네가 나빴다는 게 무슨 뜻이야?”

“나 때문에 우리 엄마 근심거리가 늘어나 버렸잖아. 우리 아빠 마음을 아프게도 했고. 그러다 여기에 엄마 아빠랑 같이 오게 되었던 거야. 우리 엄마 아빠는 여기서 내 몸을 태우고 남은 뼛조각을 모아서 집으로 데려가셨어. 우리 집에 내가 좋아하던 큰 나무가 있거든. 그 옆에 묻어주셨지.”

저는 샐리가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인지, 저도 이제부터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너는 그럼 계속 여기에 사는 거야?” 

“아니, 집에도 왔다 갔다 해. 여기는 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매일 오니까 도와주고 싶어서 오는 거야. 낮에는 여기로 놀러 왔다가 밤에는 엄마 아빠 옆으로 가.”

“그렇구나. 참, 나는 금이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니?”

저는 친구들에게 제 이름을 말해주면서 갈색 털의 다리가 긴 친구에게도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어요. 

갈색 친구는 자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곳에서 다른 친구들이 ‘하늘’이라고 부른대요. 하늘이는 처음엔 과묵해 보여서 말을 걸기 어려웠지만 제가 묻는 말에는 대답을 잘해주었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하늘이가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듣게 되었어요. 

“주인님이 새벽에 말없이 나를 처음 본 장소에 데려가셔서 맛있는 음식을 엄청 많이 주셨어. 그런데 나는 생전 처음 가 본 장소인 데다가 아직은 어두운 시간이라 긴장도 되고 주인님한테서 이상한 기분이 느껴지는 거야. 배가 고파 일단 음식을 한 입 먹다가 주인님이 계시던 방향을 쳐다봤는데 주인님이 우리가 같이 타고 왔던 차에 혼자 타고 계셨어. 차가 출발하기 전에 같이 올라타려고 했지만 차 문을 탁 닫아버리시고는 저 멀리 떠나버리셨어. 열심히 뛰어서 따라갔는데 우리 주인님 차는 정말로 빠르거든.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어. 다시 오시겠지, 나를 찾으러 다시 오시겠지, 거기서 계속 주인님을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들이 구조해주셔서 결국 보호소까지 가게 되었어.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우리 주인님은 모르실 텐데 나를 찾으실 텐데 내가 있는 곳을 주인님에게 알리고 싶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무척 답답하고 슬펐어. 어느 날 보호소 선생님이 철창에서 꺼내주시더니 따뜻하게 꼭 안아주시고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그리고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깊은 잠을 잤는데 눈을 떠보니까 저쪽 옆 동네였어.”

“그럼 옆 동네에서 어떻게 이 동네로 오게 된 거야?”

“보호소에서의 마지막 날 잠이 들면서 내 이름도, 우리 주인님 얼굴도 모두 잊어버려서 주인님과 헤어지게 된 그날의 장면과 내가 그때 많이 슬퍼했다는 마음을 붙들고 우리 주인님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샐리를 만났어. 샐리가 이곳에는 친구들도 많고 지내기에 더 편할 거라면서 여기로 데리고 와 준 거야.”

하늘이의 말을 듣던 샐리는 하늘이를 쿡 찌르며 저한테 이렇게 얘기해 줬어요. 

“하늘이 얘는 지금은 여기에 살고 있어. 내가 자꾸 저 위에 다녀오라고 해도 안 가고 있는데 고집이 보통이 아니야. 저기 위로 가면 정말 편하거든. 그리고 거기서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가 다시 몸을 받을 수 있는데도 얘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니까.”

샐리는 입을 삐죽거렸어요. 

 

“저 위가 어디야?”

“우리가 몸에서 빠져나오면 가야 하는 곳이 있어. 누구나 다 가는 곳이야. 몸이 없는 우리가 여기에서 살아가려면 저 위에다가 우리 존재를 알리고 조금 씻고 와야 하거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깨끗하게 바뀌게 될 거야.”

“깨끗하게 된다고? 그럼 우리가 지금 더러운 상태인 거야?”

“하하. 몸을 씻는다는 의미가 아니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태로 존재해야 하니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영양분도 많이 받아서 이 세계에 스며들 수 있게 훈련하는 거야.”

저는 그 말을 듣고 솔직히 잘 이해는 가지 않았답니다. 저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데 존재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렇지만 친절하게 설명해 준 친구가 고마워서 일단은 알아듣는 척했어요. 

“그럼 너는 저 위에 갔다 온 거야?”

“당연하지. 한참 전에 갔다 왔지.”

“올라가면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

“음... 그건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사람마다 그리고 동물마다 각각 다 다르거든. 그렇게 길진 않았던 것 같아. 나는 더울 때 올라갔다가 추울 때 내려왔는데 엄마 아빠 얼굴에서 세월이 흐른 흔적도 느낄 수 없었고 엄마 머리가 아주 약간 길어져 있었어. 며칠? 몇 달 정도?”

저는 이번에는 하늘이에게 너는 왜 저 위에 다녀오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요. 

“저 위에 가 있는 동안은 우리 주인님을 못 만나니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계시는데...... 우리 주인님이 내가 저 위에 가 있는 동안 나를 찾으면 어떻게 해?” 

그러자 샐리가 하늘이의 머리를 핥아 주면서 말했어요. 

“괜찮다니까. 다녀와서 너희 주인님은 네가 찾으러 가면 되지! 위에 다녀오면 우리 몸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롭게 훨훨 다닐 수 있어. 지금은 주인님이 너를 찾아오시기만을 기다려야 하잖아.”

“그래도.... 올라가는 건 좀......” 

샐리의 말에 하늘이는 고민이 많은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꼭 이렇게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버티는 녀석들이 일단 올라가면 더 안 내려오더라. 다시 태어나야 하는 순간까지도 안 가겠다고 하면서 저 위에서 눌러앉기도 하고.”

 하늘이는 자신은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고 그 모습을 본 샐리가 저를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어요. 

“저 위는 편하거든. 아프지도 않고 친구들도 많고,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지. 내 집은 따뜻하고 모두 나를 사랑해. 그리고 너도 모두를 사랑해. 다른 동물들하고 또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거든. 지금은 너의 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습관적으로 배가 고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 위에서는 입으로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거야. 우리에게 주어진 빛으로 우리가 마시는 공기로 우리는 충분히 맛있다는 감정을 느끼고 만족감을 느끼게 되거든. 아무튼 굉장히 좋은 곳이야.”

“그러면 너는 왜 다시 내려왔어?”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서 샐리는 왜 내려왔을까 궁금해진 제가 샐리에게 물어봤어요. 샐리는 잠시 후 떨리는 목소리로 저에게 대답해 줬어요. 

“엄마..... 목소리를 들었거든. 저 위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바위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우리 엄마가 나를 불렀어. 엄마 목소리에 눈을 살며시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엄마가 나를 만나러 와 있더라고. 우리 엄마가 나를 못 잊어서 잠자는 동안 꿈속에서 나를 만나러 오셨던 거야. 우리 엄마는 물론 잠에서 깨면 아무것도 기억 못 하시겠지만 ‘아! 내가 이렇게 편한 생활에 익숙해져서 우리 엄마 아빠를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구나.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순간만이라도 엄마 아빠 옆에 머물러야겠다’라고 생각해서 내려오게 된 거야. 영양분을 받으러 저 위로 올라가거나 또 온 세계를 여행하면서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오고 가면서 내 몸이 태워진 이 장소에도 다시 와보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러니까 너도 너희 엄마 아빠가 보석으로 만들어진 네 몸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시면 일단은 집에 같이 따라갔다가 집에서 마음속으로 ‘잘 다녀오겠습니다. 제 이불하고 방석은 치우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소원 빌고 최대한 빨리 저 위에 다녀와. 하루라도 빨리 다녀와야 엄마 아빠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만날 수 있어. 그리고 기왕이면.... 하하하하 저 위에 올라가기 전에 여기 잠깐 들러서 얘 좀 데려가 줄래? 네가 같이 간다고 하면 얘도 길을 나설지도 몰라.”

하늘이는 샐리의 말을 듣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이고 기죽은 모습으로 말했어요. 

“만약에 네가 같이 가 준다면 나도 저 위에 다녀오는 일 다시 생각해 볼게. 혼자 가는 길은 두렵지만 친구랑 같이 가는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샐리는 하늘이의 대답을 듣고 기쁜 듯이 꼬리를 한참을 흔들었어요.

 “어! 저기 너희 엄마 아빠 아니야? 봐봐. 너를 여기에 버리고 가신 것이 아니라니까.” 

진짜였어요. 우리 아줌마, 아저씨가 다시 이 건물로 돌아오셨어요. 저는 너무 반가워서 샐리와 하늘이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주인님들에게 달려갔답니다. 샐리가 제 등 뒤에 대고 소리쳤어요. “위에 가기 전에 여기 꼭 다시 들러, 이 친구는 아무래도 네가 있어야 갈 것 같으니까! 꼭이야!” 

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주인님들에게 뛰어가서 우리 아줌마 품에 안겼어요. 물론 실제로 아줌마는 저를 안아주지 못하셨지만요. 

주인님들은 여기 직원분들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셨고 이제는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은 제 몸, 그러니까 에메랄드색 보석을 들고 차에 올라타셨어요.      

우리 가족은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저씨는 오늘은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회사에 가지 않으셨나 봐요. 우리 가족들 사이에 정적이 감도네요. 늦은 저녁까지도 아줌마 아저씨 둘 다 그냥 말없이 TV만 켜놓고 멍하게 앉아계셨어요. 그런데 하필 TV에서 귀여운 강아지들이 화면에 나왔는데 우리 아줌마 아저씨는 그 장면을 보시고 우리집은 또 눈물바다가 되었어요. 

두 분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 잠자리에 드셨어요.

아줌마는 잠들기 전 “금이야, 우리 금이야, 금이야, 우리 금이야” 저를 여러 번 부르면서 자신의 심장 근처 옷을 마구 잡아 뜯으셨어요. 저 역시 우리 아줌마 심장에서 강한 통증이 나오고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 통증이 너무 강력해서 제 심장이 다 아플 지경이었어요. 물론 저는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기분이 그랬어요. 

 샐리가 말한 그곳에 올라가기 전에는 아줌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꼭 전해줘야 할 텐데. 저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줌마는 서럽게 우니까 속상하네요. 아줌마한테 짖거나 발톱으로 팔을 긁어서 제 마음을 전달하고 제 존재를 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너무 답답했어요. 

저를 수없이 부르시다가 겨우 잠든 아줌마를 지켜보다가 저는 제 밥그릇이 있는 곳으로. 혹시나 밥이 있을까 싶어서요. 기대했던 대로 밥이 아주 많이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우리 아줌마 아저씨가 주무시는 방을 위주로 집 안 곳곳에 숨겨둔 간식을 찾아다녔답니다. 그동안 제 키가 작아서 닿지 못했던 곳들에도 올라가 보기도 하고 우리 아줌마가 제 간식을 가득 담아놓은 상자도 건드려보고 하면서 말이죠. 우리 집에 이렇게 다양한 공간이 있었네요. 특히 아줌마랑 아저씨가 저 몰래 두 분만 먹으려고 숨겨둔 과자 창고를 발견한 것은 예상치도 못한 큰 성과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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