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내메모

펫로스, 나는 꿈을 기록한다 10

나의도넛을지켜줘! 2023. 11. 2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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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 ‘금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제 강아지의 이름입니다. 

※ 금이의 일기는 저의 상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허구입니다. 

※ 아줌마의 메모는 저의 실제 경험을, 아줌마의 꿈은 제가 실제로 꿨던 꿈을 바탕으로 기록하였습니다.


2023. 6. 6. 오후 

[금이의 일기]

 

몇 시간이 지났어요. 우리 아줌마는 할머니와 통화를 하셨고 오후 늦은 시간에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어요. 할머니는 나무 향이 느껴지는 삼베 천에 할머니께서 직접 바느질로 수놓은 꽃이 그려진 손수건 두 개를 가지고 오셨는데 하나는 제 몸에 덮어주시고요. 다른 하나는 제 입에 물려주셨어요. 

우리 할머니는 평소에 실과 바늘을 이용해서 자수를 놓는 것을 좋아하셨거든요.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께서 직접 만든 손수건이나 행주 가방 같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 중에서 저에게 제일 어울리는 것을 가지고 오셨대요. 저에게 이 손수건을 덮어 주실 때 손수건에 수놓아진 예쁜 꽃에서 우리 할머니의 사랑이 은은하게 향기처럼 퍼져나갔답니다. 

할머니는 저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시면서 “금이야, 고생했어. 잘 가.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해주셨어요. 

비록 저는 어디 다른 곳에 갈 생각은 없지만 가만히 누워서 할머니의 말씀에 “할머니, 저를 만나러 와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대답해 드렸어요. 

저는 이때 어쩐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조금 무서우니까 그냥 몸속에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어요. 

우리 가족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빵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저는 그 대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저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저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소리요. 

저는 이 모습들을 아주아주 작게 잘라서 저의 기억에 빼곡히 저장해 두었어요. 


잠시 후 식구들이 저만 쏙 빼놓고 모두 다 같이 집 밖으로 나갔어요. 아마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길을 배웅하러 가신 것 같아요. 우리 할머니께서는 오늘은 주무시지 않고 그냥 돌아가시는군요. 하루만 더 있다 가셨으면 했는데...... 많이 바쁘신가 봐요. 

식구들이 모두 나간 집에서 저는 문득 배가 고프지도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제 밥통 쪽에서 제 사료 냄새가 나고 있었지만 침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요. 

아! 제 사료는요 아줌마가 직접 주시지 않았고요. 시간이 되면 ‘띠리링’하는 소리를 내면서 사료를  밥그릇으로 쏟아부어 주는 기계가 제 식사를 준비해 줬어요. 그래서 지금쯤이면 제 밥그릇에 꽤 많은 양의 사료가 쌓여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문득 사료가 얼마나 쌓여 있을지 제 밥그릇의 상황이 궁금해졌어요. 

저는 지금 거실에서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굳어가는 제 몸과 함께 누워있거든요. 지금 제가 있는 각도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밥을 주는 기계가 보일 테니까 어쩌면 밥그릇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씩 몸을 움직여 봤어요. 어? 생각보다 부드럽게 움직여지네요. 이번엔 누워있는 자세에서 앉는 자세로 바꿔봤어요. 와! 이것도 되네요. 앉아서 기계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제 밥그릇에 사료가 잔뜩 쌓여 있어요. 

신기하게도 그 사료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조금 궁금한 마음이 들어 오늘의 사료 상태를 확인하러 살짝 내려가고 싶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두둥실 공중으로 떠올랐고 식탁과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갔어요. 높은 곳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누가 꿈속이라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몸을 벌벌 떨면서 “아래로 내려갈래.”하고 다급하게 외치니까 이번엔 제 몸이 바닥을 향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덜컥 겁이 난 저는 공중에서 발버둥을 치면서 아줌마를 부르고 소리치다가 눈을 질끈 감아버렸어요. 응? 지금쯤 아픔이 느껴져야 하는데 전혀 아프지 않네요. 

이상해서 용기를 내서 눈을 살짝 떠보니 저는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해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어요. 

발을 내밀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보았어요. 바닥이 미끄덩미끄덩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헛발질하는 것처럼 발바닥이 바닥에 잘 닫지 않았고 휙휙 미끄러지기만 해 균형을 잡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넘어지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드디어 밥그릇 앞에 도착했어요. 제 밥이 밥그릇에 그대로 있군요. 누가 빼앗아 먹지는 않았을까, 아줌마가 치워버리지는 않으셨을까 시끄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갔답니다. 제 소중한 사료는 그대로 잘 있었어요. 

고개를 들어 조금씩 집안을 살펴보는데 저와 닮은 어떤 강아지가 거실 소파 위에 놓인 상자 속에 누워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마음속으로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저 강아지가 저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소파로 훌쩍 뛰어올라 가만히 누워만 있는 저의 몸을 한참을 지켜봤어요. 제 몸은 평소 저의 피부색보다 조금 하얗게 변한 듯했고 체온이 조금 낮아진 것도 같지만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렇다고 아주 차갑지도 않았거든요.

몸 밖으로 나와서 마주한 제 신체는 무척이나 낯설었어요. 

제 모습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이렇게 오랫동안 살펴본 건 이날이 처음이에요. 제 눈 밑에 점이 있다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네요. 집에 거울이 있어서 한 번씩 제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보지는 않았어요. 거울을 보기도 쑥스럽고 그다지 기분도 유쾌하지 않아 큰 거울 앞을 지나갈 때면 슬쩍 곁눈질만 하고 말았거든요. 그래도 우리 아줌마는 저를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에 탈 때면 항상 뒤돌아서 거울을 보여주셨는데 우리 아줌마랑 거울을 통해서 눈을 마주치는 기분은 좋아했어요. 아줌마와 저를 번갈아 보면서 우리의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지요.  제가 깃들어서 살아가던 신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꽤 멋진 일이었어요.. 솔직히 ‘혹시 다시 내 몸이 살아나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는데요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살펴본 결과 저는 이 몸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네요. 제 몸은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모든 생존 기능을 멈춰버렸거든요. 그리고 이제 어쩌면 땅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일지도 몰라요.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저는 이제 이 몸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에요. 저와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고 저에게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게 해주고 산책을 즐기도록 해주고 응아와 쉬야를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사랑하는 우리 아줌마 아저씨가 가진 등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줬던 고마운 나의 몸. 이놈과 이별하는 것이 어쩐지 서글프고 서운하네요.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 제 몸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 더 많이 봐주고 최대한 오래 같이 있어 줄래요.      


저녁이 되어 아줌마와 아저씨가 돌아오셨어요.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신 것을 보니 제 생각대로 주인님들은 할머니를 배웅하러 다녀오신 것이 맞았나 봐요.      

우리 아줌마는 집에 돌아오시자마자 제 간식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가득 담아 밥그릇 앞에 따로 놓아주셨어요. 아제 밥그릇은 용도에 따라서 두 가지가 번갈아 가면서 사용되고 있어요. 앞 말했던 사료가 자동으로 나오는 기계에 딸린 밥그릇 말고 추가로 주인님들이 간식이나 맛있는 음식을 주시는 간식 그릇도 있거든요. 

저는 아줌마가 간식 그릇을 꺼내기만 하셔도 ‘맛있는 것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행복한 긴장감이 생긴답니다.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주실까 언제 주실까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꾹 참고 그릇에서 시선을 절대로 떼지 않았어요. 오늘도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나고 있어요. 와~신난다. 우리 아줌마가 오늘도 고기를 주시네요. 

먹어볼까요? 

간식 그릇에 얼굴을 들이밀어 봐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아줌마는 얇은 고기를 구워서 잘게 잘라 제가 먹기 편하게 준비해주셨어요. 입에 넣고 목으로 삼키고 맛이 느껴져요. 그런데 아무리 제가 고기를 많이 먹어도 음식이 그대로 그릇에 남아있어요.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네요. 제가 먹을 때마다 우리 아줌마가 음식을 계속 채워주시는 것일까요? 

그건 아니고요. 

저는 예전처럼 입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 아줌마가 주신 음식은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이고요. 

사실 먹지 않아도 이미 먹은 것처럼 배도 부르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기분이 들어서 아쉽지는 않아요. 

지난번에 바람 속에서 은근슬쩍 말 걸어 주었던 친구들이 저에게 미리 얘기해 줘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생소한 느낌이군요. 간식 그릇에 코를 가져다 대고 음식을 느끼고 먹으면 정말로 우리 아줌마가 주신 이 고기를 삼킨 것 같이 맛있고 배도 불러요.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우리 가족들 옆에서 우리 가족들을 지켜보시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계시는 누나가 집안에 계세요. 언제 들어왔지? 처음 보는 누나예요.... 우리 할머니랑 닮은 것 같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아줌마 아저씨는 저 누나가 있는지 모르시는 것 같아요. 우리 주인님들 눈에는 안 보이는 건가? 이 누나는 우리 아줌마보다는 많이 어려 보이는 앳된 분이네요. 

안 되겠어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주인님들 허락 없이 우리 집에 들어온 사람 같아 보여서 제가 한 소리 해야겠네요. 

“누나!”

누나가 저를 보고 대답은 안 하고 웃기만 해요. 

“누나! 우리 아줌마 손님이에요?”

제 물음에 누나는 그제야 입을 열었어요. 

“초대받은 손님은 아니지만, 네 주인아줌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지.”

“?”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수 없어요. 우리 집과 우리 주인님들은 제가 지켜야 해요. 

“근데 우리 집에 이렇게 막 들어오셔도 되나요? 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우리 아줌마가 집에 허락 없이 들어온 누나를 보고 무서워할 수도 있어요. 그만 나가 주세요.”

누나는 웃으면서 저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착한 강아지구나.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너네 아줌마를 지켜주기 위해 가족들 옆으로 자주 왔었는데 너는 이제야 나를 볼 수 있구나.”

“우리 집에 자주 오셨었다고요?”

“그렇단다.”

“그럼... 우리 아줌마 아저씨는 누나를 보지 못하나요?”

“응. 맞아. 신체에 켜져 있는 횃불의 수가 많고 그 불이 세차게 타고 있는 존재들은 그 불 때문에 나를 보지 못해. 너의 주인아줌마 아저씨 역시 마찬가지겠지.”

“누나는 우리 아줌마를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했죠? 그러면 우리 아줌마 안 아프게 도와주시고 저 때문에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지금도 보세요. 우리 아줌마 머리가 많이 아파서 힘들어하잖아요. 우리 아줌마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 아줌마를 지켜주세요.”

“아가야, 저 아이는 나에게도 귀한 아이란다. 네가 아줌마를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나 역시 네 주인아줌마를 걱정하고 있단다.”

“진짜요?”

“그럼. 그러니 이제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도 이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해서 어리둥절하고 무서울 텐데 아줌마부터 걱정하다니 정말로 기특한 아이구나.”

“저는 괜찮아요. 저는 우리 아줌마 아저씨가 괜찮다면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제 대답에 누나는 싱긋 웃더니 “나는 이제 다시 저위에 올라갔다 와야 해.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함께하고 있어. 네가 조금이라도 외롭다고 느끼거나 두려움에 떨게 된다면 언제라도 달려올게.”

누나의 말은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누나는 좋은 사람 같았고 제가 누나를 일부러 찾지 않아도 저의 마음을 읽으시고 제 옆으로 오신다는 말씀 덕분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콩닥대던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어요.      


 

이제 누워있는 제 몸에서는 급속도로 열기가 빠져나갔고 이제는 무척 차갑다고 느껴져요. 

우리 아줌마는 온기를 잃어가는 제 몸을 계속 쓰다듬으면서 또 울고 있어요. 

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우리 아줌마한테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놨어요. 

“아이고, 우리 아줌마 또 운다. 아줌마 청승맞게 왜 그래?”

투덜거리는 제 속마음과 다르게 싸늘하게 식어 가는 제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본 우리 아줌마는 더 크고 서럽게 울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 아저씨도 덩달아 엉엉 우셨어요. 우리 집이 완전 아수라장이 되었네요. 

그나저나 시간이 흐를수록 핏기가 빠져나가고 있는 저의 몸은 조금씩 하얀색에 가까워지게 변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저는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까요. 그동안 고생한 제 몸에게 고마웠다고 아픈 것 견뎌내느라 고생 많았다고 속삭여줬어요. 

모두 잠을 자야 할 밤이 되었어요. 

온기를 잃은 제 몸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아줌마는 저를 한번 꼭 끌어안아 주셨고 다시 상자에 곱게 넣어주셨어요. 우리 식구들은 같은 공간에서 다 같이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저는 제 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그냥 아줌마 아저씨 중간에 놓여있는 제 몸에 들어가서 붙어 있었어요. 제 몸이 놓여있는 위치가 아줌마 아저씨 두 분 모두 잘 보이는 자리였거든요. 

저는 밤새도록 우리 주인님들의 잠든 모습을 지켜봤고 그림 같은 그 장을 제 마음속에 사진처럼 꼭꼭 눌러담아 저장해 두었답니다.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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