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내메모

펫로스, 나는 꿈을 기록한다 3

나의도넛을지켜줘! 2023. 11. 2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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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 ‘금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제 강아지의 이름입니다. 

※ 금이의 일기는 저의 상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허구입니다. 

※ 아줌마의 메모는 저의 실제 경험을, 아줌마의 꿈은 제가 실제로 꿨던 꿈을 바탕으로 기록하였습니다. 


2023. 5. 27. 

[금이의 일기]

 

저는 시계를 볼 줄은 몰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른 아침이었던 것 같아요. 

아줌마가 오늘 할머니 댁에 간다고 저한테도 옷을 입으라고 하셨어요. 저 말이 진짜 저 스스로 옷을 입으라는 말은 아닌 것쯤은 알아요. 아줌마랑 12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가 그것도 모를까. 아줌마가 곧 옷을 입혀줄 거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겠어요.      

잘됐어요. 소중한 분들과 눈을 마주치고 체온을 느끼고 사랑이 담긴 손길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까요. 조금 더 늦었으면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내 몸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몰라요. 우리 할머니에게 제 몸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우리 할머니는요, 저를 이 집안에 처음 데려온 분이에요. 

저는 2011년 8월 진짜 진짜 더웠던 여름 어느 날에 큰 도로 근처에서 며칠을 혼자 헤매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먹지도 못해서 배도 고프고 목도 너무 말라서 정말로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길을 건너야 할 것 같아, 큰길을 건너려고 했죠. 그런데 발을 떼기만 하면 커다란 차들이 위협하듯 다가와서 저를 피해 갔고 또 한 발을 떼면 다른 차들이 쌩쌩 달려오며 큰소리로 “빵! 빵!” 경고하는 바람에 저는 잔뜩 겁을 먹고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갔어요. 제가 도로를 건너려고 할 때 어떤 차들은 저를 피하느라 휘청거리기도 했는데 그 모든 상황이 두려웠어요. 배가 고파서 움직일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자꾸 저 반대편으로 가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어요. 그 이유는 왠지 저쪽에서 물소리가 나고 있었거든요. 그때 저는 정말로 살고 싶었어요. 이 세상에서 널리 퍼져있는 다양한 냄새들도 맡으며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저를 사랑해 주는 주인님을 만나 최대한 오래도록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었어요. 

깜깜해진 산속의 밤은 무서웠고 제 몸에 붙은 진드기는 저를 아프게 했어요. 

다시 한번 힘을 내서 길을 건너려고 하던 때였어요. 

누군가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났어요. 

“이리 와. 쫑쫑”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니까 어떤 아주머니가 인자하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와 눈높이가 맞게 쭈그려 앉으시고는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고 계셨어요. 저는요..... 그냥요. 너무 힘들었어요. 배가 고팠어요. 무서웠어요. 그래서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단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분에게 무기력하게 다가갔답니다.      

그 아주머니는 갓길에 세워둔 차에 저를 태우시고는 이 어둡고 무서운 도로에서 빠져나와 사람들도 많고 불빛도 많은 곳으로 데려가시더니 저를 차에 가두고는........ 그대로 가버렸어요. 숨을 쉬라고 열어 놓은 구멍에 대고 무조건 소리쳤어요. “무서워요.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 저 좀 살려 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저를 꺼내주지 않았어요. 

‘이젠 정말 지쳤어. 포기할래.’

감겨오는 눈꺼풀을 더 이상 붙잡지 않고 그냥 뒀어요. 

눈을 감으니 세상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어요. 

그런데요, 그런데 말이죠. 아주머니가 두 손 가득 제가 먹을 수 있는 사료와 간식, 물을 안고서 헐레벌떡 차로 돌아오셨네요.

그 아주머니는 봉지를 다급하게 뜯더니 제가 앉아 있는 의자에 사료를 쏟아부어 주셨어요. 

곧이어 맛있는 캔 사료와 물도 주셨답니다. 저는 아직도 그때 먹었던 첫 사료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며칠 만에 처음 먹은 식사였거든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사료였어요. 

정신없이 밥을 먹으면서 아주머니를 쳐다보니 아주머니는 “이제 어쩐다.”라며 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저는 밥을 먹다 말고 본능적으로 아주머니 무릎 위로 재빨리 올라가 절대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했어요. 아주머니가 저를 다시 좌석에 떼어 놓으셨지만 저는 또다시 아주머니의 무릎으로 올라갔어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은 제가 이겼어요. 그 아주머니는 저를 무릎 위에 올려놓으신 채 다시 자동차에 시동을 거셨고 제가 바깥 풍경에 관심을 보이니까 창문까지 열어주셨어요. 

저는 자동차가 어느 장소에 멈춰 설 때까지 그 아주머니 무릎 위에서 습하기도 하고 후텁지근하기도 한 한 여름의 공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느끼면서 안정을 되찾았어요. 

저를 집으로 데려온 이 아주머니가 지금 저에게는 할머니예요. 지금 우리 주인아줌마가 ‘엄마’라고 불러요. 

지금의 우리 주인아줌마는 할머니께서 저를 집에 데리고 들어오니까 무척 놀라셨고 “아니 그렇게 막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 우리가 강아지를 책임질 수 있는 집도 아니고.”라며 할머니에게 화를 내셨지만 바로 저를 내쫓지는 않으셨어요. 그날 밤 저는 ‘오늘은 그래도 이 집에서 안전하게 잘 수 있겠다’ 생각하며 할머니가 마련해 주신 담요 위에서 오래간만에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었답니다. 


 저를 큰 도로에서 꺼내주시고 우리 식구들과 만나게 해주신 우리 할머니 댁에 가려고 하는 거예요. 제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지요.  

할머니 댁은 지금 우리가 사는 집에서 좀 멀어요. 차를 타고도 몇 시간을 가야 하거든요.

원래 우리 아줌마와 할머니는 집안에서도 짭조름한 바다 향기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바다에서 무척 가까운 동네에 살고 계셨거든요. 저, 할머니, 우리 아줌마 이렇게 셋이 몇 년간 같이 살다가 우리 아줌마가 지금 우리 아저씨랑 살게 되면서 저를 데리고 그 집에서 나왔어요. 그 뒤로 우리 할머니를 자주 만나지는 못하게 되었죠. 그마저도 우리 아줌마랑 아저씨가 바다에서 더 멀리 떨어진 지금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더더욱 할머니를 만나기는 어려웠답니다. 

우리 아줌마랑 아저씨가 할머니 댁에 방문할 때는 항상 저를 데리고 가셨는데 두 분은 저를 할머니 댁에 맡겨놓고 며칠씩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는 일이 가끔 있었어요. 저는 우리 주인님들에게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씩씩하게 할머니 댁에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우리 할머니는 제가 집에 있으면 밖에서 볼일을 보시다가도 일찍 들어오시고 저를 앉혀놓고 이런저런 얘기도 해주시며 제가 있어서 쓸쓸하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또, 우리 할머니가 우리 아줌마보다 고기랑 고구마를 더 많이 주셨고 초콜릿 과자나 쌀밥, 빵 등등 사람들만 먹는 음식을 잔뜩 주셔서 “할머니 댁에 언제 가요?”, “할머니는 언제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우리 아줌마한테 여쭤본 적도 많답니다. 아줌마는 한 번도 대답해주지 않으셨지만.     


그런데 우리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기쁘지만 제 몸이 잘 버틸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아저씨 차를 타고서 우리 할머니 댁으로 출발했어요. 

아저씨는 운전을 하시고 아줌마는 그 옆에 앉아서 저를 안아 주셨어요. 저는 뒷 좌석은 멀미도 심하게 나고 불안해서 뒤에서 혼자 앉아 가는 것을 무척 싫어하거든요. 뒷좌석에서 앉을 때마다 심하게 울면서 짖고 발작도 몇 번 했더니 차로 이동할 때는 앞자리에서 아줌마 품에 안겨서 가는 일이 많아요.     

오늘은 또 어떤 휴게소 들러서 냄새를 맡게 해주실까요? 

두근두근. 차가 출발했어요. 한 20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에요. 기분이 이상하고 숨이 가빠졌어요. 머리도 무척 아파서 아줌마를 쳐다보면서 “나 너무 아파요.”라고 말씀드렸어요. 아줌마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시는 눈치였지만 제가 숨을 제대로 못 쉬니까 아저씨랑 몇 마디 말을 나누시더니 가까운 휴게소에 들어가셨어요. 원래 여기는 평소에 잘 들르지 않던 휴게소이지만 제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으셨나 봐요. 잠시 쉬면서 바람을 쐬니까 머리 아픈 것도 한결 나아졌고 몸 상태가 꽤 괜찮아졌어요. 멀미를 했던 것 같네요. 헥헥거림도 잦아들고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답니다. 제가 안정되고 나서 아줌마랑 아저씨는 각자 화장실을 다녀오셨고 우리는 다시 할머니 집을 향해 출발했어요.      

‘숨을 못 쉬겠어’ 

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니까 머리가 또 아팠어요. 아까보다 훨씬 많이 아팠어요. 

저는 울었어요. 너무 아파서 숨을 못 쉬겠다고 소리쳤어요. 아줌마는 아저씨한테 병원으로 바로 가자고 하시며 목적지를 변경하셨어요.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 댁으로 가는 도중 출발한 지 40분 만에 병원으로 방향을 돌렸고 자동차의 속도가 줄어들자 몸이 많이 괜찮아졌어요. 제 상태를 살피던 주인님들은 대화를 나누시고 고민하는 듯하다가 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셨어요. 주인님들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맛있는 음식을 주셨고 저를 계속 옆에서 지켜보셨어요. 

아줌마가 고기를 구워주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음식들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어요. 

제가 사료와 음식을 전부 다 먹은 뒤에 아줌마는 맛있는 간식을 더 주셨고 저는 그 간식까지 다 먹고 집안에 혹시 더 숨겨진 간식은 없는지 온 집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아줌마는 장바구니를 들고 잠시 외출하셨고 저는 우리 아저씨와 다리는 없고 매트리스만 있는 넓은 침대에서 서로 몸을 붙이고 낮잠을 잤답니다. 이 자리엔 항상 아저씨의 체취가 남아 있어서 좋아요.  엉덩이를 아저씨 몸에 착 붙이니까 아저씨는 제 몸을 쓰다듬어주시다가 코를 골면서 주무셨고 우리는 같이 깊은 잠에 빠졌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아저씨랑 저랑 코골이 소리가 비슷해요. 저는 아저씨보다 엄청 쪼끄맣지만 코를 고는 소리에서만큼은 아저씨보다 더 클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귀가 잘 안 들려서 누구 소리가 더 큰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죠.

제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집안에서 아저씨 자동차 소리도 다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로 귀가 밝았답니다. 

아저씨가 퇴근하시고 돌아오시면 집 근처로 다가오는 아저씨의 자동차 소리에 저는 반가운 마음으로 현관으로 달려가 아저씨가 집에 들어오시는 순간을 두근두근하며 기다리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것도 꽤 오래전의 기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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